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프 버나딘 (문단 편집) == [[췌장암]] 투병 == [[1995년]] 6월, 버나딘 추기경은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자신이 6살 때 아버지를 똑같이 암으로 여의었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처럼 자신의 현실을 태연하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일단 교구 차원에서 자신의 투병 사실을 신자들에게 알리고, [[교황]] 및 스티븐 쿡을 비롯한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격려를 받으며 로욜라 중앙병원에 입원했다. 물론 교구에 대한 책임은 다른 [[주교]]에게 모두 물려주었다. 이 로욜라 중앙병원에 있는 암센터는 추기경 사망 수 주 전인 [[1996년]] [[10월 29일]]에 '버나딘 추기경 암센터(Cardinal Bernadin Cancer Center)'라는 이름이 붙는다. 버나딘 추기경은 자신이 '''환자이기 이전에 [[사제(성직자)|사제]]'''라는 마음가짐으로, 병실에 갇혀 지내는 것보다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나름대로의 짧은 사목활동을 한 뒤 퇴원했다. 그 뒤에도 여러 암환자들과 연락하며 그들을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지속했다. 하지만 당초 5년 이상 살까 말까 했던 예상과는 달리, 1년 만인 [[1996년]] [[8월 30일]] 수술이 불가능한 지경의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는다. 사실 수술을 받고 나서 별다른 이상징후가 없어 치료되었다고 믿었던 암세포가 간으로 옮겨져 자라고 있었던 것. 예전처럼 사목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이젠 몸이 버티지 못하여 이 때부터 ~~[[웰빙|웰다잉]]~~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1996년]] [[9월 9일]]에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대통령]]으로부터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훈장 중 가장 명예로운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고, [[9월 20일]]에는 [[보스턴]] 대교구로부터 '그리스도의 사랑상(Caritas Christi Medal)'을 받았다. 또한 [[9월 23일]]에는 [[로마]]로 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하고 [[아시시]]로 가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을 만났다.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유품 및 [[유서]], 자신이 맡았던 임무의 이양 문제 등을 정리하고 자신의 [[장례식]]과 남겨지게 될 [[어머니]]에 대한 지시사항을 마련했다. [[11월 1일]]에는 인생 마지막 3년 간의 회고록 《평화의 선물(The Gift of Peace)》 집필을 끝마쳤고, [[11월 14일]] 68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참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